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 - 박인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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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 - 박인근 기고
  • 전아영
  • 승인 2021.01.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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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저널 자문위원 박인근./사진제공=박인근
동서저널 자문위원 박인근./사진제공=박인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는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 악당인데,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았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을 데려와 자신의 쇠 침대에 눕혀 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만큼 잘라내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서 죽였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횡포나 독단을 가리킨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끝이 난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서 침대에 누이고는 똑같은 방법으로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어 처치했다.

인간은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상호 신뢰를 쌓아 원만하게 소통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여 사회 공동체의 불문(不文)의 원칙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고, 간혹 권력을 앞세운 자들의 강권에 의한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억압을 당하는 상황도 일부 있었던 경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나 직접 겪은 일로 알 수 있다.

작금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또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원칙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것을 집단화, 세력화한 자기들만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주장하거나 과시하면서 사회의 혼란을 야기(惹起) 하는 일을 자주 접한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산물인 SNS를 통하여 쇠 침대의 힘을 빌려 무리하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관철시키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 하게 일어난다.

동일한 사안(事案)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갑()을 적용하여 평가하고 또 어떤 사람에 대하여는 을()의 입장에서 처리한다면 사회 갈등은 커지고 심화되어 치유가 어려운 상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소위 떼법으로 불리는 사리(事理)에 맞지 않는 집단화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의 일방적 주장에 대하여 관대하거나 무관심이 그들을 더 기고만장(氣高萬丈) 하게 만들며, 잘 짜인 사회 시스템을 서서히 허무는 일을 조장(助長)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주는 우리의 의식과 자세에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방약무인(傍若無人) 한 저들의 행동을 철저하게 응징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의 무능함과 비겁함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고 사회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저들의 무리한 주장에 편승하여 개인의 야욕을 이루려 한다면 사회 안정을 바라는 다수의 뜻을 외면하고 일방통행식 오도(誤導)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우리의 미래는 많은 대가를 지불하여야 할 처지에 놓일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 시대 조조(曹操)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천자만 출입할 수 있는 백마 이문(白馬門)을 조조의 아들인 조식(曺植)이 수레에 탄 채 백마문을 지나가려 하자 순욱(荀彧)이라는 조조의 제일의 참모가 그 모습을 보고 조식을 나무라고, 이것을 본 조조가 조식을 나무라는 한편 저 백마문을 없애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들은 순욱은 조조의 미래를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조와 결별하였다고 한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중국은 약 360년간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한다. 역사의 당연한 귀결(歸結)이며, 하늘의 거물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이 보여도 나노섬유의 그것보다 더 촘촘하여 하늘을 거스르는 일은 거물에 걸러지지 않는 것이 없고, 역린(逆鱗)을 건드린 자에 대하여 준엄한 응징을 가한다.

끝없는 욕망으로 가득 찬 어리석고 우매(愚昧) 한 자들은 칠흑(漆黑)과 같은 어두움에 갇혀 있어 응징의 칼을 볼 수 없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응징의 칼은 현미경보다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듯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맹위를 떨치지만 그건 한순간에 지나지 않고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밟을 것이라 생각한다. 침대에 신체를 맞추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었다. 침대의 소리가 요란하면 할수록 토마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항하는 다수의 대응으로 큰소리치는 세력들은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고, 평화를 누리기 위해 사회계약의 상태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앞세워 반사회적 행동을 자행(恣行) 하는 일이 만연(漫然) 하고 그들이 결집하여 득세하면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데 큰 장애가 될 수 있음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집단 최면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저들을 응징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면 그 피해는 모두 우리에게 돌아오고 사회적, 국가적 손실은 막대하며 선진사회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도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하였으니 나의 의견만 옳은 것이 아니라 남의 뜻도 경청(傾聽)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 맺은 사회의 계약이다. 타성(惰性)에 젖은 무기력함과 비겁함을 일신(一新) 하고 소의 발자국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장애물을 헤치고 앞을 향하여 전진하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미래를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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